아버지날과 버려진 아기
(2025.6.15. 조인 목사)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부친이 목회하시던 경상남도 언양(지금은 울산광역시)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형과 누나로부터 내가 부산의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왜 나의 친모는 나를 버렸으며, 왜 지금까지 찾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부산에 있는 작은집 근처의 어느 시장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그곳에서 옷 장사를 하는 친모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실제 그런 친모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사실 친모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또한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다가 지금까지 키워준 지금의 부모를 과연 내가 떠날 수 있을까를 시장 입구에서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백성이 역시 포로였던 에스겔 선지자에게 그들의 나라가 멸망한 이유를 묻자, 그는 버려진 아기에 대한 비유를 들어 대답했습니다. “너를 돌아보아 이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겔16:5). 이는 하나님이 과거 애굽에 버려진 채 죽어가던 유다 백성을 구원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일은 마치 부모가 들에 버려진 채 죽어가는 아기를 데려다가 사랑으로 키운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아기는 장성한 후에 그 부모를 배신했습니다.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겔16:22)
하나님은 과거에 죄 가운데 버려진 채 죽어가는 아기였던 우리를 데려다가 키워서 그의 자녀와 아내로 삼으셨습니다.(겔16:7-8,13) 그러나 이러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 또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맺으신 언약적 관계이므로(겔16:8) 항상 이 관계를 파기하는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식과 아내입니다. 성도가 하나님만을 부모로 섬기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실제의 삶에서는 숨겨놓은 부모가 너무 많은바, 성경은 이런 엉뚱한 효도를 우상숭배라고 경고합니다. 나를 주워 와서 키워준 육신의 부모를 잘 섬기는 것도 중요하다면, 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효도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언약적 의무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버려진 아기가 많으며, 하나님은 지금도 그들을 찾으십니다. 이때 하나님은 먼저 데려다가 키우신 우리를 통해서 그들을 찾으십니다. 장로교인은 하나님이 구원하실 자를 예정하셨다면 굳이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먼저 구원받은 자를 통해서 버려진 아기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잘 알기에 더욱 전도에 힘씁니다. 더구나 장로교인은 하나님이 나를 버려진 아기를 찾는 수단으로 예정하셨음을 믿기에 주변의 버려진 아기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습니다. 오늘 아버지날에 하나님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아 단 한 명이라도 우리 주변의 버려진 아기를 찾는 아버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미디어 | Media > 담임목사칼럼 | Pastor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임목사주보칼럼) 마리아는 중보자인가? (6/29) (0) | 2025.06.29 |
---|---|
(담임목사주보칼럼) 충돌하시는 하나님 (6/22) (0) | 2025.06.22 |
(담임목사주보칼럼) 졸업식 축사 (6/8) (0) | 2025.06.08 |
(담임목사주보칼럼) 장로교회와 신앙고백서 (6/1) (1) | 2025.06.01 |
(담임목사주보칼럼) 이중예정, 선택과 유기 (5/25) (0) | 2025.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