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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주보칼럼) 다섯 솔라 ➂ 오직 은혜 (11/17)

패인초 2024. 11. 17. 08:38

다섯 솔라 ➂ 오직 은혜

(2024.11.17. 조인 목사)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상은 송명희 시인의 ‘나’라는 시로써 그녀는 이 시의 내용처럼 자신의 장애를 오히려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극복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시는 수십 년 전에 찬양곡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바, 하나님의 은혜는 그야말로 공평하기에 성도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의 형편에 감사하며 자족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도 하나님의 공평한 은혜일까요? 하나님의 구속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사람, 즉 구원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만 존재합니다. 이때 그 구원은 누가 결정합니까? 한 사람이 자기의 구원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수 있습니까?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라면, 구원받는 자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며, 구원받지 못한 자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결심에 달린 문제입니다. 일단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절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지 않는 것은 매우 상식적이며, 공평한 처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대로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이미 구원할 자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에 관한 그의 은혜는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9:11,13)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확하게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이미 쌍둥이 형제 중에서 오직 동생인 야곱만 구원하기로 선택하셨으며, 그 선택의 기준은 전혀 야곱에게 있지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뜻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믿음 이전에 하나님의 선택이 먼저입니다. 인간 편에서 믿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조차 인간의 결심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구원의 문제는 결국 누가 이 믿음을 선물로 받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오직 자신이 선택한 야곱에게만 선물로 주시기에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은혜는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입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만세 전에 선택하셨고, 그 결과 내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음을 믿게 됩니다. 시인은 구원의 은혜가 불공평하기 때문에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