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別世)신앙
(2024.3.17. 조인 목사)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헐몬산으로 알려진 높은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이때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에 광채가 나며 변했기 때문에 이 산은 흔히 변화산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단지 예수님의 외모의 변화가 아닌 본질의 변화, 즉 부활체로의 변화였는데, 이는 그가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임을 뜻합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나타나서 변화하신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한 제자들은 엘리야의 출현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본격적인 메시아의 도래를 나타내는 징조라 생각하여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이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막8:11)
제자들은 엘리야의 출현으로 인하여 드디어 이스라엘의 회복, 즉 로마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의 때가 도래했다고 믿었습니다. 변화산에서 모습이 변한 예수님이야말로 곧 이스라엘의 독립을 성취할 정치적인 메시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말씀을 했습니다.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막8:12) 정치적인 메시아가 고난과 멸시를 당한다고요? 심지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자(막9:9) 더욱 당황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쟁취할 메시아가 고난과 멸시를 당하고, 마침내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아, 혹은 경제적 메시아가 아닙니다. 그는 우리에게 정치적, 경제적 자유가 아니라 죄와 저주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주기 위해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회복은 단지 한 국가의 독립이 아니라 한 죄인의 사단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하는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구원을 위한 성부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동일한 변화산 사건을 기록한 누가는 예수님의 죽음을 ‘별세’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눅9:31) 별세의 원형은 ‘엑소도스(exodus)’, 즉 탈출을 의미하는바, 예수님의 죽음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부터 탈출하여 구원받았듯이 죄인이 죄와 저주와 사망으로부터 탈출하여 구원받는 유일한 근거라는 뜻입니다.
이미 별세하신 한국의 한 목사님은 소위 별세(別世)신앙의 목회로 유명합니다. 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별세하셨듯이 그를 믿는 성도 역시 그와 함께 별세해야 합니다. 별세신앙은 부활신앙이기도 한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던 내가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날 때 나도 살고, 그리스도도 살리고, 교회도 살리고, 세상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별세신앙이란 단지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피안적, 현실 도피적 개념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리는 실천적 개념입니다. 그러나 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왠지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예수님께 했던 질문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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