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 Media/담임목사칼럼 | Pastor Column

(담임목사칼럼) 3•1운동과 기독교 (3/3)

패인초 2024. 4. 13. 16:28

3•1운동과 기독교

(2024.3.3. 조인 목사)


1.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 선언을 세계 온 나라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크고 바른 도리를 분명히 하며, 이것을 후손들에게 깨우쳐 우리 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길이 지녀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2. 반만년이나 이어 온 우리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된 마음을 모아서 이 선언을 널리 펴서 밝히는 바이며, 민족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며,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인류적 양심이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온 세계가 올바르게 바뀌는 커다란 기회와 운수에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내세워 보이는 것이니, 이 독립 선언은 하늘의 밝은 명령이며, 민족자결주의로 옮아가는 시대의 큰 형세이며, 온 인류가 함께 살아갈 권리를 실현하려는 정당한 움직임이므로, 천하의 무엇이든지 우리의 이 독립 선언을 가로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이상은 기미독립선언서의 처음 부분입니다.)

 

31(만세)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있던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일으킨 독립운동으로써, 기미년(1919)에 일어났다고 해서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줄여서 기미운동)이라고도 부릅니다. 민족대표 33인이 31일 서울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함으로써 시작된 만세운동은 마침 고종의 장례식(33)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서울로 모여든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순식간에 대규모 운동으로 번졌습니다. 역사의 자료에 의하면, 당시 31일부터 430일까지 전국 220개 군 가운데 212개 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켜 당시 조선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2백만여 명이 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7,509명이 사망하고, 15,961명이 부상하고, 46,948명이 체포되는 큰 비극을 낳았으나 그 결과 411일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만세운동에는 기독교의 역할이 컸습니다. 당시 31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의 종교를 보면 기독교 22%, 천도교 15%, 기타 종교 2%, 무종교 61%였으며, 민족대표 33인 중에서도 천도교인과 불교인이 각각 152명인데 비해 기독교인은 16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처럼 당시 기독교 신자가 조선 전체 인구의 1-1.5%25-30만 명에 불과했음에도 기독교인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지도자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에 일본 총독부는 기독교를 더욱 심하게 탄압했는바, 대표적 사건은 제암리교회 방화 사건입니다. 1919415일 일본은 경기도 화성의 제암리감리교회에 28명의 교인들을 감금한 채 방화하고 총검으로 학살했지만, 그들의 순교로 오히려 한국 기독교는 더욱 성장했습니다.

 

올해는 3110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당시 조선 총독부의 한 문건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 민족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의 교회다.” 한국만 아니라 미국의 유일한 소망도 교회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오늘도 국가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