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먹는 초콜릿
(2024.2.18. 조인 목사)
발렌타인데이의 정확한 명칭은 성 발렌타인 축일(Saint Valentines’ Day)입니다. 이 축일은 3세기 기독교의 사제였던 발렌티누스가 입대를 앞둔 남자의 결혼을 금지했던 당시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의 명령을 어기고 결혼식을 집례했다가 순교했던 날인 2월 14일을 기독교가 기념일로 지정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발렌티누스가 실제 인물인지, 혹은 또 다른 인물인지에 관한 논란도 있지만, 오늘날 카톨릭교회와 정교회는 물론 성공회에서도 그를 순교자(성인)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발렌타인데이는 전 세계적으로 연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로 지켜지다가 오늘날은 성별과 연애 여부와 상관없이 이웃과 친구, 동료들 사이에서 초콜릿 등을 선물하는 날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관습은 1861년 영국의 한 초콜릿 제조 회사가 이날을 맞이하여 초콜릿을 선물하는 광고를 기획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일본의 한 제과 회사가 발렌타인데이를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기획하면서 초콜릿의 판매량이 급증했지만, 과도한 상술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몇몇 이슬람 국가와 북한은 이날을 기독교적이며, 자본주의적인 날이라는 이유로 아예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발렌타인데이가 대체로 부활절 이전에 위치하기에 발렌타인데이 때 다 팔지 못한 초콜릿을 회수하여 녹인 후 부활절용으로 토끼 모양의 초콜릿을 제작하여 재판매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날이 설날과 겹치면 설렌타인데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2024년 올해는 발렌타인데이인 2월 14일이 사순절이 시작되는 수요일. 즉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기도 합니다. 사순절은 부활절을 준비하는 40일 기간의 절기이며, 이 절기는 항상 재의 수요일이라 불리는 수요일에 시작합니다.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십자 모양으로 바르고 죄를 고백하면서 시작하는 사순절은 사실상 로마카톨릭교회와 성공회의 절기이지만, 오늘날 몇몇 개신교의 교단도 재의 수요일과 사순절을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마에 재를 바른 사람은 사순절 동안 금욕과 절제, 회개를 통하여 정결한 삶을 살면서 부활절을 맞이할 것을 결단합니다. 사순절 시작의 표시로 용서와 죄에 대한 슬픔을 상징하는 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경으로 알려졌습니다.
문득 몇 해 전 한 여성이 사순절에는 초콜릿을 금식하겠다고 인터넷에 올린 글이 생각나는데, 발렌타인데이와 재의 수요일이 같은 날이라면 고민이 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개봉한 영국 영화 ‘초콜릿’에서는 사람들이 사순절에 초콜릿을 먹습니다. 마을 사람 전체가 카톨릭 신자인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로 이사 와서 초콜릿 가게를 운영하는 한 여인은 사순절에는 문을 닫으라는 압력 속에서도 꿋꿋하게 가게를 운영했으며, 그녀가 만들어 파는 초콜릿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는 법을 배웠고, 마을은 활기를 찾았습니다. 사순절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개혁주의 목사로서 40일 만의 금식이 아니라 늘 초콜릿을 먹으면서 늘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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