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형상
(2024.2.4. 조인 목사)
과거 한국에서의 청소년 시절 교회를 다닐 때는 소위 대예배라 불리는 어른 예배 시간에 온 성도가 한목소리로 다 같이 십계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예배에서 십계명 읽기가 사라지더니 오늘날 예배 시간에 십계명을 읽는 교회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25년 전 미국에 와서 처음 출석하던 교회가 예배 시간에 십계명을 읽어서 너무 반가웠던 기억이 있는데, 그 교회도 요즘은 십계명을 읽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우리 교회도 주일예배 시간에 십계명을 읽지 않는데, 예배의 분위기나 시대에 맞지 않다거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는 너무 궁색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24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매 주일예배의 설교를 통해서 십계명을 한 계명씩 공부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나 예배 시간에 십계명을 읽고, 암송하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계명을 지키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 즉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계명이 예배의 대상을 규정하는 계명이라면, 하나님과 짝을 이루는 형상, 즉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제2계명은 예배의 방법을 규정하는 계명입니다. 모든 교회가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예배의 대상만 분명하다면 예배의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면 일리가 있으나, 이는 제1계명과 제2계명이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제2계명이 금하는 우상은 단지 다른 신의 형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타 종교를 믿지 않고, 불상이나 지하대장군 앞에 절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십계명의 제2계명을 잘 지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로마카톨릭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던 그림과 조각 등 온갖 형상을 제거했던 이유는 그것들이 다른 종교의 신의 형상이어서가 아니라 기독교의 하나님을 대체하는 형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대체하거나 그 형상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예배는 명백한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그림과 조각만이 아니라 오늘날 예배의 개혁과 전도, 혹은 하나님의 임재 경험이라는 명목으로 도입되는 온갖 비성경적인 프로그램과 기법들도 마찬가지로 십계명의 제2계명을 어기는 우상숭배입니다.
벨직신앙고백서(Belgic Confession of Faith. 1561)는 제3장에서 성경, 특히 십계명에 관해서 진술한 후에 제7장에서는 성경과 예배에 관해서 이렇게 진술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모든 태도가 성경 속에 다 기록되어 있으므로, 심지어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성경 외의 것을 가르치는 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합당한 일이 아니다. 이 책의 말씀 외에 무엇을 더하거나 제하여 버린다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은 모든 면에서 성경의 말씀이 완전하고 충분한 것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나 성경과 십계명을 말하고, 특히 교리까지도 강조하지만, 실제로 성경과 십계명이 규정하는 방법대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아서 참 씁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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