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점짐
(2024.6.30. 조인 목사)
지난 2018년 한국경제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당시 한국에는 30만 명의 역술인과 15만 명의 무속인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 사실과 함께 한국의 점술시장 규모가 약 4조 원에 이른다고 크게 보도했는데, 이후 역술인과 무속인의 숫자와 시장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역술업이 성업 중입니다. 한국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역술과 관련된 업종은 예언술, 구상술, 관상 및 골상학, 점성술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집, 무당, 심령술업, 풍수서비스업, 토정비결 서비스업 등을 의미하며, 흥미롭게도 올해 4월에 열린 한국역술인협회 총회에서는 역술인을 역학사(易學士)로 부르기로 결정하고, 모든 단체의 이름까지 바꾸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아가보 선지자는 두 가지 미래의 사실을 예언했습니다. 첫째는 로마제국의 4대 황제였던 글라우디오 황제 때 온 천하에 크게 흉년이 들 것이라는 예언이며(행11:28), 둘째는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에 의해 체포되어 이방인(로마)에게 넘겨질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행21:11). 그러나 이 두 가지 예언은 단지 한 개인의 운명에 관한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천하에 흉년이 든다는 예언은 교회가 흉년을 대비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는 하나님의 계시였으며,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고난 당한다는 예언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된다는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아가보와 같은 선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가보가 한 개인의 운명에 관해 예언한 것이 아니듯이, 오늘날 한 개인의 길흉화복에 관해 예언하는 선지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설령 아가보가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관해 예언했을지라도 오늘날 그러한 일을 예언하는 선지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성경이 개인의 길흉화복에 관한 예언 자체를 금하고 있기 때문이며, 후자의 경우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관한 모든 예언이 성경의 완성으로 인해 종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정경으로 완성되지 않았을 때는 성령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면 사도와 선지자들이 이를 사람들에게 전했지만, 성경의 완성으로 인해 이러한 직접 계시의 시대는 종결되었습니다.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정말 예언이 없을까요?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딤전1:18) 목회자 디모데에게 필요한 예언은 어떤 예언입니까?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행전15:32) 선지자 유다와 실라가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할 때 사용했던 ‘여러 말’은 무엇입니까? 당시는 직접 예언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개인적인 길흉화복을 점치듯 말하는 예언이 아니라 기록된 성경을 통해 성도를 권면하여 굳게 하는 수단을 뜻합니다. 기독교인이 무속인과 역술인을 찾는 것도 문제이지만, 기독교 신앙을 무속화하고 교회를 점집으로 만드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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