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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주보칼럼 ) 듣는 예배 & 보는 예배 (6/2)

패인초 2024. 6. 2. 07:57

듣는 예배 & 보는 예배

(2024.6.2. 조인 목사)


 

개혁주의 교회는 예배를 듣는 예배보는 예배로 구분합니다. 듣는 예배란 성도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들음으로써 참여하는 예배이고, 보는 예배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봄으로써 참여하는 예배입니다. 성도는 죄인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피 흘림에 대한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일반적으로는 선포되는 말씀을 귀로 들음으로써 접합니다. 또한 성도는 성찬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눈으로 봄으로써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접합니다. 그러나 성찬 자체가 죄인을 구원하는 수단은 아닙니다. 죄인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피 흘림을 믿게 하시고, 중생케 하시는 성령님의 내적인 사역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령님의 내적인 사역, 즉 죄인에게 믿음을 주시고, 중생케 하시는 사역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피 흘림에 대한 말씀을 이미 과거에 들음으로써 중생했고, 구원받은 자입니다. 이미 중생하고, 구원받은 성도에게 듣는 예배는 말씀을 여전히 귀로 들음으로써 복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행위이며, 불신자에게 듣는 예배는 성령님께서 그 복음의 말씀을 그들의 귀에 계속하여 들려주시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미 구원받은 성도가 떡과 포도주를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먹고, 마심으로써 이 복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행위가 보는 예배’, 즉 성찬입니다.

 

굳이 보는 예배가 필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친히 성찬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예수님이 체포되시기 전날인 유월절 밤에 예수님과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모였던 제자들은 유월절 양고기를 준비하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유월절 음식으로 준비하심으로써 친히 구약의 유월절을 계승하셨습니다. 이 유월절 밤에 예수님은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면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죄인의 구원을 위한 자신의 죽음과 피 흘림을 세상 끝날까지 기념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므로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는 마땅히 성찬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찬에는 단지 기념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뿐입니다.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의 표시라면, 성찬은 그 연합이 지금도 유효함을 확인하는 표시입니다. 세례가 단회적인 시작점이라면, 성찬은 계속적이며 단계적인 종착점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피 흘림에 대한 기념을 넘어 그의 살과 피를 지금 먹고 마심으로써 영적인 성장을 꾀하며, 성도의 의무를 되새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한 몸이 된 다른 성도와의 교제를 증진하는 수단, 즉 성화의 수단입니다. 성화의 주된 수단이 귀로 듣는 말씀이라면, 성찬은 눈으로 보는 보조수단이므로 반드시 이를 설명하는 말씀의 선포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듣는 예배와 보는 예배가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한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