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여호야긴인가?
(2024.9.1. 조인 목사)
유다 왕국의 20명의 왕 중에서 마지막 세 왕은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입니다.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는 위대한 요시야 왕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바벨론에 대항하다가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여호야김은 쇠사슬에 결박된 채 바벨론에 끌려갔는데,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보듯이 그는 바벨론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렘22:13-23; 36:30-31). 또한 본명인 맛다니야 대신 바벨론식 이름인 시드기야로 개명한 마지막 왕 역시 바벨론에 대항하다가 두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해야 했으며, 급기야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결박된 채 바벨론에 끌려가서 감옥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왕하25:7; 렘52:11).
여호야김의 아들이었던 여호야긴 역시 바벨론에 대항하다가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이처럼 유다 왕국의 마지막 세 왕의 공통점은 바벨론에 대항하다가 바벨론에 끌려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야긴의 최후는 다른 두 왕과 달랐습니다. 18세에 왕이 된 그는 불과 3개월 만에 바벨론에 끌려가서 무려 37년 동안 감옥에서 생활했으며, 그 사이에 유다 왕국은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이 갑자기 여호야긴 왕을 감옥에서 석방했으며, 심지어 그를 평생 자기와 같은 왕처럼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렙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이월 이십오일에 그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렘52:31)
37년 만에 석방된 여호야긴 왕의 나이는 55세쯤 되었을 것인데, 포로로 끌려온 다른 국가의 왕을 이처럼 석방하고 왕처럼 대접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설령 다른 국가의 왕에 대한 예우라 할지라도 다른 두 왕, 즉 여호야김과 시드기야에 대해서는 그렇게 예우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왕은 왜 하필 여호야긴 왕만 이처럼 예우했을까요? 다른 두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끝까지 바벨론에 대항했지만, 여호야긴은 처음에는 대항했지만 나중에는 바벨론에 항복했습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이방 국가에 항복하는 것이 매우 자존심 상하며 수치스러운 일이겠으나 여호야긴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중에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긴의 석방은 단지 그에게만 주어진 은혜가 아니라 온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야긴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림으로써 그를 통해 유다 왕국의 왕위가 끊어지지 않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여호야긴)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마1:12)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여호야긴 왕을 석방하시고, 그의 왕위를 회복하신 이유는 그를 통해서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셔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바벨론 왕이 왜 하필 세 왕 중에서 여호야긴만 석방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지금도 일하십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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